인류의 역사를 바꾼 천재들,
천재들의 눈부신 성공 뒤 감춰진 실패. 천재들도 피할 수 없었던 실패,
천재들의 실패 속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포에버 27 클럽 들어보셨나요?
장르를 불문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압도적 재능을 보여준, 천재 아티스트들의 집합입니다.
대표적인 인물ㅇ른 현대 미술의 거장 장 미셸 바스키아입니다.
모두 만 27세의 나이에 모두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포에버 27 클럽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천재 아티스트는?
오늘의 주인공은 자타공인 천재 작가, 이상입니다.
형식을 부수는 실험적 시인으로 일제강점기 독창적인 작품을 남긴, 시대를 앞서간 천재 문학가입니다.
지금까지도 논란과 연구의 대상입니다.
1919년 경술국치의 해에 태어나서 스물일곱 해만을 살았던 이상.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를 온몸으로 견디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창조합니다.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 날개를 비롯해서 거울, 오감도 시리즈 등 수많은 걸작들을 남겼죠.
그의 작품들은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죠. 현대 모더니즘 문학의 핵심이에요. 그의 이름을 딴 상이 있습니다.
오늘은 짧았지만 그 누구보다 뜨겁게 타올랐던 천재 이상의 삶을 살펴보면서 그에게 어떤 실패가 있었고, 그 실패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살펴볼 예정임.
이상은 천재죠!! 이견은 없어요.
그러나 살아있던 당시의 평가는 지금과 달랐습니다. 최고의 문학가라기 보다는 괴짜? 이해하기 힘든 연구 대상?
그이유는 바로 그의 작품들이, 그 당시 글쓰기 형식과 규칙을 깨뜨린 파격적인 문학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낯설고 독특한 시들을 남긴 이상.
사각 안의 사각 안의 사각 안의 사각 안의 사각.
사각인 원운통의 사각인 원운통의 사각인 원.
비누가 통과하는 혈관의 비누 냄새를 투시하는 사람.
반복적인 단어가 운율 같기보다는 주문을 외우는거 같은 느낌이죠.
서정성과는 거리가 먼 실험적인 스타일, 여기서 끝이 아닌데, 이상은 단순히 글자로만 시를 쓰지 않습니다.
마치 실험을 하듯이 문학 속에서 새로운 방식을 계속 시도합니다.
난감한 시입니다. 심지어 수학 수식까지. 이렇게 이상은 기존의 형식을 완전히 파괴합니다.
이상을 두고 왜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지 이해가 되시죠? 그렇다면 이상은 왜 이런 시를 썼을까요?
쉽지 않은 천재의 문학, 이상의 원래 직업은 건축 기수였습니다.
지금의 건축공학 기술사입니다. 문과형 천재가 아닌 이공계 출신의 문학가.
당시 조선에서 고급 공업 기술 인력을 양성하던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합니다.
서울대 공대 전신 출신인 수재. 학교 다니는 3년 내내, 1등이었다고 합니다.
1929년 건축과 수석 졸업을 합니다.
바로 조선 총독부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 조선총독부에 취업한다는 건 극히 예외적이었는데, 수석 졸업자라 조선총독부 취업이 가능했습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조선 청년들에게 꿈의 직장 중 하나였습니다. 안정된 직장 생활에 높은 급여,
8~9급 정도되는 공무원들의 초임 월급이 당시 돈으로 10원.
조선 총독부 건축 기수의 월급은? 당시 돈으로 88원.
그런데 조선인이라는이유 때문에, 차별을 받았던 이상, 일본인과의 차별이 어디 월급뿐이겠습니까.
직장내 괴롭힘과 모욕까지,
사원 이상을 부릅니다.
서류를 툭 하나 던져주고는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고,
해결해 오라고 하는데, 서류를 보니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작업임.
열흘 치 업무 폭탄을 받은 이상, 계속된 일본 과장의 괴롭힘, 이상은 일제강점기라는 한계 속에서 엘리트가 됐지만, 결국은 식민 지배를 받는 존재였던 거죠.
식민지 현실에 좌절을 넘어 깊은 환열과 내적 고통에 시달린 이상.
점점 더 스트레스가 쌓여가자, 이상의 돌파구는 창작을 선택합니다. 천재다운 스트레스 해소법이네요.
이때부터 문학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게 됩니다.
낮에는 조선총독부 직원. 밤에는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됩니다. 이상의 이중생활이 시작됩니다.
조선총독부 근무 시절 쓴 시가 20여 편이에요.
하지만 그의 이중생활은 안타깝게도 4년을 채 넘기지 못했습니다.
1931년 어느 날, 공사 현장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진 이상,
병명은 폐결핵입니다. 폐결핵은 지금이야 치료만 잘하면 고칠 수 있는데, 당시만 해도 치료 약이 없었습니다.
23세에 얻은 불치명, 폐결핵 투병 중 일본인 과장의 괴롭힘마저 계속되니까, 1933년 스스로 조선총독부를 퇴사합니다.
실패로 끝난 직장 생활.
차별로 얼룩진 실패한 직장 생활입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직장을 관둔 이상은 이후 뭘 했을까요?
카페 이름은 제비다방.
사실 이상이 다방을 차린 이유는, 문학 활동을 위한 이상의 예술적 아지트입니다.
종로 1가에 있었던 제비다방,
창작과 더불어 전시회도 하며 서로의 생각을 교류했던 장소입니다. 식민지 시대의 고층을 나누던,
예술가들의 피난처인 다방, 서구에서 들어온 살롱 문화입니다.
살롱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모여 문학, 예술, 정치를 토론하던 사교 모임입니다. 그런 살롱 역할을 했던 제비 다방.
1920~30년대 근대 소비문화를 추구한 도시 청년층입니다.
제비다방의 단골손님은?
그리고 봄봄, 동백꽃의 작가 그리고 메밀꽃 필 무렵, 김유정과 이효석.
제비다방이 핫플레이스인데, 다방 운영이 잘 안돼요.
뛰어난 글쓰기 실력과는 다르게, 경영 실력은 0점. 친구들에게 공짜 커피를 나눔.
다방 실패의 또 다른 이유는 제비다방을 차리기 전, 기생 금홍와 사랑에 빠집니다.
금홍은 이상이 돈을 많이 벌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하지만 돈벌이에 관심 없는 이상, 이에 점점 불만이 쌓인 금홍.
폭력까지 행사한 금홍. 이상이 금홍한테 맞아서, 울면서 친구 집으로 도망간 적도 있습니다.
금홍은 제비다방을 찾는 남자 손님들과 수시로 외도를 벌였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납니다.
금홍의 배신으로 파탄 난 사랑.
제비다방이 폐업 위기 였던 1934년. 이상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본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제비다방을 드나들면서 교류하던 동료 작가가 자신이 학예부장으로 있는 신문사에 작품 연재를 제안합니다.
당시 이상은 신문사에 추천해준 사람은 소설가 이태준입니다. 연재를 승인한 신문사 사장은?
신문사 사장은 몽양 여운형입니다.
이상은 신문 연재 제안을 수락하고, 1934년 7월 24일 이상의 작품이 공개됩니다.
순차적으로 게재된 오감도 시리즈, 차례대로 시제 2호, 3호 쭉쭉쭉 신문에 게재가 됩니다.
오감도 시제 1호가 공개된 이후, 심오한 뜻을 품고 있는 오감도.
그래서 이름을 오감도라고 정한거 아니야?라고 해석을 해요.
병적이고 공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 것.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현실을 오감도= 까마귀가 내려다보는 그림.
예로부터 까마귀는 불길함을 상징했죠. 소름돋는 이상의 발상.
새 조에서 획을 하나 빼면 까마귀 오가 돼요.
신조어 오감도는 어디서 따온 말일까?
그리고 조감도에서 따온 이름인 오감도.
건축가들이 그리는 그림을 뭐라고 하죠?
15호까지 게재되고 연재가 중단됩니다.
바로 엄청난 악플 때문입니다. 연재 첫날부터 파문을 일으킨 오감도.
오감도가 너무 파격적이서 독자들이 신문사에 항의까지 합니다.
이상의 시에 빗발친 항의.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한 이상, 연재가 이어질수록 독자들의 비난이 격화됩니다. 그렇게 보름 만에 오감도 연재는 중단됩니다. 작품에 대해서 엄청난 비난을 받은 이상은 글로 자신의 입장을 직접 밝힙니다.
거기에 대댓글로 반박을 합니다.
끝까지 타협하지 않던 이상은 대중적 공감을 얻는 데 실패하게 됩니다.
세번째 실패의 원인은 대중의 외면입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20대의 이상, 그리고 혹독했던 실패의 대가는 신문 연재가 끊기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경영난에 폐업한 제비다방까지.
폐결핵은 점점 더 악회되어 갔고, 그리고 사회적으로 고립됩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상.
그렇다면 이상의 마지막은 어땠을까?
연재가 중단되고 2년 뒤
더 넓은 세상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부푼 꿈을 안고 일본 도쿄로! 갑니다.
설렘으로 가득 찼던 모던 보이 이상. 하지만 기대와 달리 처참했던 일본에서의 삶.
극심한 생활고와 악화된 건강, 그러다 초라한 행색으로 도쿄를 거닐다가 경찰에게 붙찹힙니다. 그리고 딱지가 붙습니다.
당시 운동가에게 붙였던 불량선인 딱지. 그렇게 몰려서 구금됩니다. 장기간의 조사로 몸은 더 망가졌고, 타국에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상의 나이 스물일곱, 요절로 멈춰버린 천재의 시간.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천재.
이상이 세상을 떠난 뒤 그가 남긴 문학은 우리 곁에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문학사의 걸작이자 시대를 앞서나간 이상의 문학 세계. 지금까지도 새로운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 작품들, 그 당시 아무도 이해 못 했잖아요.
세월이 흐르며 평가가 달라졌습니다.
난해함으로 논쟁을 일으켰던 작품들은 새로운 형식과 파격적 시도를 보여준 문학적 성취로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현대 문학의 중요한 전환점이자 현대 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린 천재 아티스트 이상입니다.
그리고 2024년, 이상 사후 90여 년 만에 의외긔 곳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0에서 9까지의 숫자가 뒤집힌 상태로 연속적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이상은 경계면의 정보만으로 내부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전자기학의 핵심 원리인 스토크스 정리를 이용해 시를 쓴겁니다.
이번 연구로 이상은 문학 작품으로도 담기 어려웠던 식민지 상황을 진단하기 위해 물리학을 접목해 오감도를 썼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연구팀이 분석한 오감도 시제 4호는
시와 물리학의 컬래버. 이상은 시에 숫자가 1부터9까지 그리고 0을 더해서 숫자들을 좌우로 뒤집어 연속적으로 나열해놨는데 그리고 대각선도 연속으로 숫자를 나열했죠.
3차원 원기둥이 되는데 수열이 자연스럽게 읽히죠.
대각선으로 계속 연결된 숫자. 여기서 끝난게 아니에요.
안쪽으로 구부려 보면 도넛 형태로 변하는데 도넛 형태에서 이어진 선을 따라가면,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선.
뫼비우스의 띠가 연상되지 않나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숫자가 무한히 순환하는 구조입니다.
연구팀이 해석한 오감도 시제4호의 의미는?
도넛의 내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고, 시의마지막에 나오는 힌트가 있습니다.
책임의사는 이상에게 시는 세상의 병을 진단하는 도구인거에요.
이상은 시를 통해서 세상을 투시하고 사회의 병든 구조를 드러내려 한 게 아닐까?
3차원의 물리법칙으로 해석된 이상의 시. 경이롭지 않습니까?
1930년대 지식인들 사이에 물리학이 인기였는데 이공계 전공인 이상, 해석의 영역일 수 있겠지만, 당시 이상이라면 문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세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을까요?
이건 정다비아니라 하나의 주장이자 해석입니다. 지금도 이상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고
작품에 끊임없는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의 시선으로 본 시제 4호는 비정상적인 숫자들의 나열이잖아요. 억압과 차별이 있던 비정상의 시대인 일제강점기.
비정사적 시대 속에서 정상적인 삶을 꿈꾼 이상.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나날들.
열심히 일해서 돌아온 자리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인이었죠.
끝없는 순환 속 자신의 모습을 오감도에 담은 것은 아닐까?
지금도 우리는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이상하다 괴짜다 단정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가 알아보지 못한 또 다른 이상. 숨은 천재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천재의 시도를 틀에 가두지 않고 한 번 더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각자의 상상과 해석으로 이상의 작품을 기억하는 것. 이상의 실패가 실패로만 기억되지 않듯이 서로를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 안 될까요?
이상을 발견해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면서...!
출처: 史시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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